작가수첩

[Lyrical Moments] 달항아리를 닮은 그 겨울의 풍경

February 1, 2024

가든디자이너 변인환의 풍경사진 이야기

White Camillia, ⓒ변인환

 

한 장에 사진에 대해 부연 설명하는 것은 크게 필요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사진은 눈에 보이는 그것이 전부이고, 감상자분들이 각자 자유롭게 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설명은 작품에 대한 선입견도 가져다 줄 수 있다. 하지만 한 장의 사진을 찍기까지의 과정과 이야기는 사진을 보는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 나름의 고민을 통해 세워진 계획과 찰나의 우연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사진일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어떤 소재를 주제로 할까?

달항아리 작품이 한창 유행했던 시기가 있었다. 갤러리에는 분야에 구분 없이 달항아리 작품이 많이 나왔고, 그만큼 컬렉터들이 많이 구매하던 시기이다. 그 현상을 지켜보면서 관심을 두게 되었고 나름 고민했다. “달항아리가 주는 미감을 항아리가 아닌 다른 소재로 비슷한 느낌을 표현할 방법이 없을까? 그것도 사진으로." 며칠 동안 주제를 찾았고, 점점 주제가 좁혀졌다. 눈 오는 날 하얀 배경으로 둥근 형태에 동백나무를 촬영하면 달항아리에서 받은 그런 느낌들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동백나무의 특별한 점은 동아시아에만 자라고 있고, 붉은 홀꽃이 동양적인 매력도 가지고 있어 달항아리의 섬세하고 우아한 느낌과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다.

 


풍경사진가는 기상관측관 같아야 하며, 철저함도 필요하다

동백나무는 온난한 남쪽 바닷가에 주로 서식하기 때문에 눈 내리는 날씨와 함께 만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촬영을 계획하며 알게 되었다. 다행히 제주도에 많은 눈 예보가 있어 촬영장소로 정하였고, 남은 것은 날씨만 잘 맞추면 된다. 풍경 사진이 재미있게 꾸준히 하고 있는 이유는 날씨가 만들어주는 자연 풍경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날씨 예측은 늘 어려운 부분이기에 출사를 갈 때 제일 신경쓰고 있다. 기상상황, 구름의 양, 온도, 습도, 풍속, 미세먼지농도 등 다양한 것들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이번 촬영에 포인트는 많은 눈이 내려야 하며, 동시에 눈이 녹기 전에 촬영을 해야 한다. 특히 서귀포 지역은 눈이 내려도 금세 영상에 온도로 올라가서 눈이 쉽게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폭설이 내린 제주는 도로가 통제되고 제설이 느리기 때문에 사전에 준비를 꼼꼼히 해야 했고, 눈길을 고려한 이동방법도 계획해야 했다. 하나에 실수가 그동안에 준비가 날아갈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떠났다.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난다

전날 촬영지를 사전 답사하고 이동 중에 눈이 가득 내린 벌판에 팽나무들이 멋지게 서 있는 아름다운 들판을 발견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얼른 차를 길가 한쪽에 주차하고 풍경이 아름다운 들판으로 들어갔다. 급한 마음 때문인지 들판에 울타리를 넘어 안으로 진입하다 어딘가에 걸려 심하게 넘어졌다. 눈이 많이 쌓여 바닥 장애물들이 보이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동시에 한쪽 손에 있는 장비를 보호한다고 순간 다른 한쪽 손으로만 바닥을 짚으며 넘어졌는데, 몸을 가누는데 한동안 시간이 걸렸다. 일어나면서 이미 내 손목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일단 거동은 가능한 상황이었고 내일 촬영이 중요하기에 약국에서 압박붕대와 진통로 응급조치를 하고 저녁 내내 얼음찜질을 했다. 하필 일요일이라 병원은 응급실만 문을 열었다. 당시 내 머릿속에는 온통 내일 동백을 만나는 것밖에 없었다. 나중에 서울에 올라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왼쪽 손목 부분에 금이 가 있어 깁스를 하였고, 한동안 치료하면서 불편함을 겪었다.

 


드디어 상상 속 장면과 만나다

당일에는 마음이 들떠서인지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전날 내린 폭설 탓에 제주의 도로는 대부분 통제되었고, 아침 뉴스에서는 온통 폭설에 한 내용뿐이었다. 이미 날씨 점수는 100점 만점이었지만, 제설이 되지 않은 도로에는 함박눈이 가득 내리고 있어 운전은 쉽지 않았다. 촬영장소에 마지막 오르막길을 운전으로 겨우 올라갈 때까지 진땀을 뺐던 것 같다. 힘들게 도착한 동백나무 숲의 풍경은 너무 아름다웠고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바닥은 온통 하얗고 내리는 함박눈과 함께 동백들은 쌓인 눈 사이로 수줍게 붉은 얼굴을 보여주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상상하던 달항아리에서 느낀 곱고 우아한 느낌을 실제로 만났다. 내린 눈에 외투가 다 젖는 것도 모른 채 신이 나서 오랫동안 촬영했던 날이다. 그날의 장면은 한 장에 사진으로 남겨지지만, 아직도 나의 머릿속에선 선명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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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인환

변인환은 아름다운 자연과 식물을 좋아하는 조경가이자, 풍경사진가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자연이 건강하게 공존하는 것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다. 자연스럽고 오래 지속되는 식재에 관심이 많아 테스트베드에서 수년간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자연의 섬세한 매력에 이끌려 취미로 풍경 사진을 시작하였고, 최근에는 IPA, PX3, FAPA 등 국제 사진공모전에서 입상하였다.

inhwan29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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